위의 사진이 보이시나요? 저 모기장처럼 생긴 물건은 캠퍼라면 거의 하나씩 가지고들 있는 그릇 건조망입니다. 설거지를 끝낸 그릇을 저기 넣어 놓고 나무에 걸어 두면 바람과 햇볕에 순식간에 말라요. 딱 봐도 여름 오후의 더위가 느껴지지 않나요…? 오늘은 이런 여름과 장마 날씨에 잘 어울리는 캠핑 요리를 가져왔습니다.
SUMMER NO COOK RECIPE 노쿡 여름 토마토 크래미 소면
이유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는데, 저는 물 끓이는 걸 참 싫어합니다. 꼬르동 블루에 다닐 때 요리 실습을 시작하면 항상 오븐을 예열하고 물 끓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는데, 상급반에서 한 언니와 조를 짠 이후로는 항상 그 언니가 물을 올려줬어요. 그때부터 주기적으로 ‘왜 싫은지’를 고민해보고 있는데, 아직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냄비에 물을 붓고 불에 올린다라… 일단 저는 이상하게 냄비 뚜껑이 잘 도망가서 뚜껑을 찾아야 하고요. 모든 재료 손질이 끝난 후에도 물이 끓을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합니다. 파스타건 아스파라거스건 일단 끓는 물에 넣고 나면 완전히 익을 때까지 끓이는 사이에 집안에는 수분이 가득 차고요. 다 익은 재료를 건져내고 나면 뜨거운 물을 갖다 버려야 하는데 냄비는 무겁고 뜨거운 물은 위험하죠. 이 모든 감정을 뭉뚱그려서 저는 말합니다. ‘귀찮다’라고.
그래서 각종 면 요리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서 물을 따로 끓여서 삶고 건져내야 하는 파스타나 소면은 뭐랄까, 마음 먹고 만들기 시작하는 편이예요. 칼국수나 수제비나 라면처럼 물에 바로 넣어서 익으면 먹으면 되는 면과는 사뭇 다르죠. 슬픈 일입니다. 여름에는 간장국수에 콩국수, 비빔국수까지 그야말로 차가운 국수만한 메뉴가 없는데 물 끓이기 귀찮아서 포기한다니.
그런데 캠핑을 다녀보니 물 끓이는 것이 더 귀찮아진 거예요. 집에서는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사이가 가깝기라도 하지, 캠핑은 냄비에 면을 삶았으면 들고 후다닥 개수대까지 가야 물을 버리고 면을 건져낼 수가 있으니까요. 캠핑카 세면대에 물을 버리러 들고 올라간다? 뜨거운 물 냄비를 든 채로 문이나 방충망을 열어야 하고, 발판을 두 번 밟고 올라가서 여차하면 세면대 뚜껑도 열어야 합니다. 아, 적기만 해도 귀찮아요. 위험하고요. 그 사이를 아이가 뛰어다니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번 캠핑에서는 무려 아침부터 토마토 소면을 해 먹었습니다. 불 한 번 켜지 않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냐면, 풀무원의 삶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두유면을 발견했거든요. 이걸로 여름 냉파스타를 만든 걸 트위터에 올렸다가 1만 알티를 타고 말았는데, 저는 알림창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다들 물 끓이기 싫구나.
이건 정말 뜯어서 봉지째로 물을 꼭 짜내고 바로 먹으면 되는 면입니다. 식물성 재료로만 만들었지만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푸석한 두부면과 달리 소면의 질감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진짜 가늘어서 카펠리니 중의 카펠리니 같기는 한데, 저는 가느다란 면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삶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줍니다. (광고가 아닙니다. 광고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아침에 제가 무엇을 했는가. 우선 볼에 쯔유를 붓고 잘 익은 토마토를 작게 깍둑 썰어서 쯔유에 푹 담갔습니다. 생강을 살짝 갈아서 넣는 것도 잊지 않고요. 그리고 다른 볼에 크래미를 결대로 쭉쭉 찢고 설탕과 쯔유 약간, 마요네즈, 다진 마늘을 넣고 잘 버무렸어요. 깻잎도 곱게 송송 썰고요. 여기까지 불을 켜지 않았죠.
두유면을 따서 물을 짜내고 그릇에 담고, 크래미를 찢는 동안 잘 절여진 쯔유토마토절임을 국물째로 퍼서 다섯 숟갈 정도 올렸습니다. 크래미마요를 그 위에 한 움큼 올리고, 깻잎으로 장식했어요. 그리고 캠핑카에 물을 채우느라 바쁜 사람을 불러서 아침을 먹자고 앉혔습니다. 제일 먼저 들은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언제 면까지 삶았어?”
진짜 너무 뿌듯해서 잠시 일반 소면을 삶은 척 하고 싶었어요.
물론 이 토마토크래미소면은 직접 소면을 삶아서 먹어도 맛있어요. 우동면하고도 어울립니다. 포인트는 토마토를 얹을 때 쯔유를 같이 듬뿍 퍼서 두르고, 먹을 때는 쯔유에 잠겨 있는 아래쪽 소면을 잡아 올려서 크래미와 토마토를 감싸서 먹는 것입니다. 여름에 최대한 빠르게 후루룩 한 끼를 먹고 싶을 때 진짜 딱 좋은 메뉴예요.
FOOD SOUNDTRACK 장마엔 전에 막걸리지
비가 오면 막걸리에 파전이 당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언제나 많은 이야기가 따라다니죠. 이번에 막걸리와 전 기사를 쓸 일이 있었는데, 그때 알아본 바에 따르면 ‘비가 오면 공치게 되는 인부들이 주로 먹었던 음식이다’와 ‘빗소리가 전 부치는 소리와 비슷해서 생각나는 것이다’가 가장 그럴듯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기사를 쓰다 보니 전에 막걸리가 먹고 싶어졌답니다. 진정한 덕업일치의 삶이란 이런 것이죠.
그리고 어김없이 올해도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이 레터를 쓰는 지금도 바깥에는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어요. 아마 이걸 읽는 분들도 방금 빗소리를 듣지 않으셨을까요? 그렇다면 이 영상의 소리를 들어봐주세요.
보름 정도 ‘전을 부쳐서 막걸리와 함께 먹고 싶군’이라고 생각하다 캠핑에 가서 각 잡고 전을 부치기 시작하며 찍은 ASMR영상입니다. 전 솔직히 이걸 편집하면서 지금 듣는 소리가 바깥 빗소리인지 전 부치는 소리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았어요. 타닥타닥, 지글지글, 토독토독. 정말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기름에 튀겨지듯 익어가는 전의 사운드트랙.
그래서 이날 무슨 전을 부쳤냐면 바로 새우부추전과 김치전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전 BEST 3 중에 두 개예요. 나머지 하나는 늦가을 즈음에 공개하겠습니다(과연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인가). 항상 파전을 부치려고 장을 보러 가면 이상하게 부추를 사게 되더라고요. 부추를 기름에 지졌을 때 특유의 맛에 푹 빠져 있거든요. 냉동 새우를 해동해서 가위로 송송 잘라 볼에 넣고, 부추를 가위로 송송 잘라 넣어서 튀김가루와 함께 버무렸습니다. 그리고 물을 넣어서 가볍게 뒤섞었어요. 가루와 물이 만나고 나면 많이 건드리지 않아야 전이 바삭해진다는 점은 다들 알고 계시죠?
그리고 저녁에 먹으려고 산 삼겹살을 한 줄만 꺼내서 가위로 잘게 잘라 볼에 넣고, 김치를 8분의 1포기 꺼내서 가위로 잘게 잘랐어요. 김치국물도 두어 큰술 붓고요. 튀김가루를 탈탈 털어 넣고 골고루 섞었죠. 저는 전에도 부침가루보다 가벼운 질감의 튀김가루를 사용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지금 빗소리를 감상하듯 전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리들에 전을 부쳤어요.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려고 사다 놨다가 사무실에서 들고 온 채반에 종이타월을 깔고, 새우부추전과 김치전을 차곡차곡 얹고. 유자막걸리를 땄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이것도 광고가 아닙니다. 광고면 얼마나… 아무튼. 매콤하고 새콤한 맛이 강한 김치전에는 조금 단맛이 돌면서 상큼한 막걸리가 잘 어울리거든요. 사실 어떤 막걸리였더라도 잘 마셨겠지만요. 시에라 컵에 따라서 홀짝홀짝 마시니 보름 내내 그리웠던 것이 이 맛이었어! 싶어서 술술 들어가더라고요. 진심 네 잔 정도 마시고 나니까 대화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기억은 잘 안 나요. 왜냐면 이야기를 잘 하다가 그 자세 그대로 10분 정도 자고 일어났거든요. 눈을 뜨니까 대화하던 사람이 핸드폰을 가지고 놀면서 제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좋은 주말이었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립네요. 마감 안 하고 놀고 싶습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사실 오늘은 캠차레터를 처음 만나보는 구독자님이 많았어요. 그래서 혼자 조용히 조금 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면 전이 먹고 싶고 더우면 불 켜기 싫은 것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쓰다 보니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레터가 되었네요! 변함없이 초심이라면 초심인 캠차레터입니다😂 모두 비 오는 길에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셔요. 오늘도 캠차네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