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정연주입니다! 모두 느닷없는 추위에 잘 적응하고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정연주입니다! 어쩐지 매번 날씨 이야기로 시작을 하게 되는 것 같지만, 캠핑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긴 해요. 모두 느닷없는 추위에 잘 적응하고 계신가요?
저는 계절성 비염으로 내내 훌쩍거리면서, 미니 핫팩의 지속 시간은 반나절이 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다르게 따뜻하다는 추천을 듣고 누빔 법복 바지를 구입했습니다(지금 집에 택배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는 기모가 잔뜩 들어간 반려담요와 한 몸이 되어 있지요.
사실 추위는 많이 타지 않지만 추운 날씨에 난방을 틀지 않고 따뜻한 아이템의 효과를 누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타입이거든요. 조금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난방을 하게 되겠죠. 하지만 한겨울에는 한겨울만의 즐거움이 또 있는 것이니까요! 초겨울 11월의 캠차레터, 오늘도 시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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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캠핑장에서 겨울날의 햇볕과 가장 어울리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음식, 단팥입니다. 그것도 화목 난로에서 쑨 단팥이죠. 화목 난로라는 점이 왜 중요하냐면 저에게는 대놓고 활활 타오르는 노출형 화로보다 더 마음에 드는, 요리를 위한 잉여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열기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살면서 난로를 써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제 고향으로 말하자면 여름이 제철인 곳, 해운대예요. 부산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싸래기눈이라도 한 번 내리면 몇 년이 지나서까지 모두가 그 이야기를 하고요, 눈이 기적처럼 2cm 정도 내리면 교통대란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제가 바로 중학교 2학년 때 15년만에 2cm 정도 눈이 온 날 선생님 결혼식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할 뻔 했던 산증인입니다. 아직도 눈을 보면 가슴이 뛰어요.
아마 그래서일 것 같습니다. 난로를 일상 속에서 사용한 적이 별로 없어요. 가끔 경기도의 이모네에 놀러가면 연탄 난로가 있었어요. 그러면 엄마와 이모는 스웨터를 풀어서 그 털실을 주전자에 감은 다음, 물을 담고 연탄 난로에 올려서 마치 다려지듯이 곧게 펴진 털실로 새 스웨터를 떠 줬다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죠. 그게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어요. 마치 그 난로의 열기가 그냥 방한을 넘어서 마음과 일상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온도인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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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캠핑을 시작하고 겨울이 찾아왔을 때, 제일 열심히 골랐던 것이 화목난로였습니다. 저에게도 난로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니까요!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티타늄… 어떤 재질이 좋을지, 위에 안전하게 조리도구를 올릴 수 있는 디자인은 어떤 것인지,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는 어떤 것인지 직구까지 고루고루 알아봤었어요. 사실 제일 갖고 싶은 제품은 티타늄이었는데, 역시 티타늄 재질은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튼튼하고 평이 좋은 스테인리스 스틸 화목난로를 구입했고, 지금까지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사용할수록 그을음은 진하게 남아있지만 그게 또 맛인 것 같아요.
화목난로를 연통까지 착착 조립해서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운 후 그 앞에 앉아있는 것.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불멍의 순간입니다. 그냥 활활 타오르는 불보다 아주 조금 안전하고(난로와 연통이 댕뜨겁기 때문에 어린이는 근처를 절대 뛰지 않게 해야 합니다), 눈을 따갑게 하는 연기는 연통을 통해 하늘 높이 날아가지요. 그 따스함을 즐기다 보면 여기다 물이라도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어요.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이 열 에너지를 그냥 낭비하면 안 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여기다 물주전자를 올려 두고 드립 커피를 위한 물을 끓이고, 와인과 귤, 향신료를 털어 넣고 계속해서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뱅쇼를 만들고, 부탄가스를 꺼내지 않은 채로 여기다 스튜도 만들고 빵도 굽습니다. 생각해보면 장작 비용도 절대 무시할 수는 없거든요? (보통 10kg에 1만원입니다.) 그런데 왠지 에너지를 되게 절약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제가 스웨터를 뜰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털실을 물주전자로 다리는 것도 해봤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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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날은 화목난로에 단팥을 쑤었습니다. 옛날에 할머니들이 안 좋은 꿈을 꾸면 팥죽을 쑤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예부터 팥은 액운을 물리치고 우리를 보호해준다는 말이 있는 곡물이죠. 저는 사실 맛있어서 단팥을 쑵니다. 그치만 그러는 와중에 액운도 물리쳐준다면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않겠습니까? 화목난로에 장작을 때서 따뜻하면서 동시에 음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팥은 맛있고, 액운도 물리쳐주고, 바쁘겠네. 감사하네. 이러면서 먹는 겁니다.
사실 집에서도 가끔 단팥을 쑤거든요. 덤덤한 새알 팥죽과 달달한 단팥죽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백퍼 단팥죽파인데, 농도와 당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맛을 보면서 설탕양을 가감하고,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통조림 과일과 함께 먹기도 하고, 원하는 빵을 골라서 앙버터를 만들기도 하고. 단팥 한 냄비만 있으면 한동안 (혈당 걱정만 좀 하면서) 즐거운 디저트 타임을 보냅니다.
그런데 단팥을 쑤는 데에는 시간이 꽤 필요합니다. 일단 팥을 한 번 우르르 끓여서 물을 전부 따라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아린 맛이 사라지거든요. 그리고 새 물을 부어서 불에 올리고 나면 팥이 완전히 부드러워지기까지 여러 시간을 천천히 뭉근하게 끓여야 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계속 들여다봐야 해요. 팥이 엄청 물을 많이 빨아들이거든요! 냄비에 팥을 욕심껏 넣고 나면 점점 부풀어오르는 팥 대비 물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자꾸 들여다보고 물을 보충해줘야 단팥이 아니라 탄팥이 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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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완전히 부드러워지기 전에 설탕이나 소금을 넣으면 팥이 단단해지기 쉽거든요. 그래서 완전히 부드러워진 다음에 설탕과 소금을 넣고 원하는 간을 맞춰야 합니다. 진짜 생각보다 종일 집안에 팥 향기가 진동하게 만드는 과정이예요. 온 가족이 내가 단팥을 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죠.
그렇다는 것은 가스비가 계속 신경이 쓰인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왜 팥을 들고 캠핑에 갔겠어요. 화목난로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 여기다 팥을 쒀서 다음 주 내내 먹을 것이다! 뭐 그런 것입니다. 일거양득,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댕이득. 제가 정말 좋아하는 종류의 일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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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완성된 것이 사진 속의 단팥죽입니다. 맛을 여러 번 보면서 제 입맛으로 설탕과 소금의 비율을 조절하고, 기다리는 동안 옆에서 구운 절편을 썰어서 얹은 단팥죽입니다. 가끔은 화목난로에서 구운 군고구마를 썰어서 넣기도 하고, 시나몬 파우더를 솔솔 뿌리기도 해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따뜻한 단팥을 넣어서 먹어보셨나요? 두툼한 버터 토스트에 단팥을 얹고 소금을 살살 뿌린 앙버터 토스트는요? 아주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따로 없습니다.
연탄난로나 가스난로처럼 잉여 에너지가 생겼을 때, 아니면 그냥 겨울날의 디저트를 즐기고 싶을 때, 단팥을 한 번 쒀보세요. 여유롭게 천천히 팥이 익어가기를 기다리는 시간, 내 입맛에 맞춰 간을 하고 무엇을 곁들여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그 날 하루를 ‘단팥 먹은 날’로 기억하게 만들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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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매번 뉴스레터 원고를 다 쓰고 나면, 그날 말한 음식이 제일 먹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접니다. 단팥이 먹고 싶다는 이야기죠. 근데 이 단팥이라는 것이... 시판하는 단팥죽 제품 중에서는 아직 딱 제가 원하는 당도인 것을 만나보질 못했어요. '서울에서 둘째로 잘하는 집' 팥죽과 수정과를 먹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으니 이번 주 안에 단팥을 한 번 쑤겠구나, 그런 주절거림으로 뉴스레터를 마무리해봅니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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