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정연주입니다. 위 사진은 지난 주말 캠핑에서 제가 묵은 사이트 옆에 잔뜩 피어 있던 (당시에는) 이름을 알 수 없던 꽃입니다. 이럴 땐 집단지성을 이용하는 것이 답이죠. 트위터(저는 엑스라는 이름을 거부합니다)에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하고 SOS를 던진 결과 만 하루 뒤, ‘소래풀꽃입니다’라는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 퍼스널 컬러에 딱 맞는 보라색의 소래풀꽃! 우리에게는 더 이상 이름 모를 들꽃이 아닌 거죠. 주말이라도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은 캠차레터, 오늘도 시작해보겠습니다.
활활 태워야 제 맛 칼솟입니다, 함양파입니다
칼솟이란 무엇인가? 함양파란 무엇인가? 스페인 카탈루냐의 발스 마을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칼솟타다 축제를 엽니다. 이곳은 칼솟의 원산지로, 발스 마을의 칼솟은 EU의 지리적 표시 보호PGI를 받고 있다고 해요. 칼솟타다는 이 칼솟을 직화로 겉을 완전히 태우듯이 구워 로메스코 소스와 비슷한 살빗사다 Salvitxada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입니다. 칼솟을 직화로, 겉을 태우듯이 구워서, 살빗사다 소스에 찍어 먹는 것. 이게 답니다. 그런데 이 칼솟타다의 인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해요. 튀겨 먹고 볶아 먹고 삶아 먹는 음식 축제도 아니고, 오로지 이 채소 하나를 구워서 먹는 축제. 대체 어떤 맛이길래 그 난리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죠.
얼마 전부터 바로 이 칼솟이 우리나라에서도 함양파라는 이름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년 내내 구할 수 있는 대파나 양파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딱 봄의 이 시기에만 구할 수 있어요. 만약에 이 레터를 읽고 함양파가 궁금해졌다면 이번 주에 당장! 주문해야 합니다. 저도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주문했어요. 그리고 지금 한 상자 더 먹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일단 구입부터 하시고 다음 내용을 읽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구입한(구입하셨죠?) 함양파를 받아 들면 익숙한 듯 특이한 모양새가 눈에 들어옵니다. 파란 부분은 영락없는 대파예요. 하지만 뿌리 쪽으로 가면 일반 대파라기에는 살짝 통통하게 알뿌리처럼 부풀어오르는 형태를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양파라고 하기에는 날씬해요. 쪽파라기에는 많이 크고 굵죠. 딱 용기 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모양에, 맛이 궁금하기는 할 정도로 독특합니다.
함양파를 손질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차피 제일 겉껍질은 태워서 벗겨내거든요. 흙이 묻은 지저분한 껍질만 뜯어내고 깨끗하게 씻은 다음 뿌리를 얇게 잘라내세요. 그리고 숯불을 피웁니다. 역시 어차피 활활 태울 거니까 불조절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숯과 장작을 교대로 착착 쌓아서 초반에 함양파를 구워버리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함양파가 한 김 식는 동안 장작은 다 타고 숯불이 적당한 온도가 되면 냉동 삼겹살을 굽는 거죠. 여러 모로 굉장히 호쾌하게 요리할 수 있는 채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에 함양파를 올렸더니 천천히 겉이 새까맣게 타기 시작했어요. 뒤집고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골고루 새까맣게 굽자 잘라낸 뿌리의 단면에서…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채즙이 꿀처럼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때부터 슬슬 감이 왔어요. 굉장히 촉촉하고 달콤할 것 같다는 감이요. 대파도 양파도 천천히 구우면 단맛이 강하잖아요. 함양파는 이게 과일인가? 싶을 정도로 어느 정도 익으면 즙이 계속 뚝… 뚝… 떨어집니다. 얘 뭐지? 저 떨어지는 즙도 아깝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이 되면 전체적으로 말랑말랑해져요. 그러면 꺼내서 신문지 위에 척 올려 둡니다. 완전히 타서 어디 접시 같은 곳에 올리거나 다른 식재료와 같이 두기에는 좀 애매해요. 신문지를 펼쳐서 쌓아둔 채로 식히는 것이 딱 좋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식으면, 파란 이파리를 머리채 잡듯이 잡고 들어올립니다. 이것도 신문지 위에서 따로 진행하는 것이 좋아요. 탄 부분이 바람에 날리면 다른 음식에 묻기 쉽거든요. 그리고 한손으로 파란 이파리를 잡은 채로 다른 손을 이용해 탄 껍질을 아래로 끌어내 통째로 벗겨냅니다. 양파를 까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포인트를 잘 잡으면 완전히 새까만 껍질이 벗겨지면서 아주 새하얗고 촉촉한 속살이 탱글하게 드러납니다. 이 순간의 쾌감이 엄청나요! 제 손은 두개 뿐이었기 때문에 이거 좀 어떻게든 영상으로 찍어달라고 외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불을 피우고 활활 태우는 난리를 친 함양파의 맛은 어땠는가. 제일 굵은데도 부드럽게 잘 익은 함양파를 하나 집어 들고 입에 넣었습니다. 썰지 마세요. 그냥 함양파는 지저분하게 요리하고 먹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예요. 손이 새까매지고 길쭉한 대파 같은 모양새를 그냥 입에 넣고 부드러운 속만 쪽 빨아내 먹는 겁니다. 제일 겉껍질이 질겨서 잘 안 잘리면 어차피 안쪽 속살만 빠져나와요. 데이트하면서 먹기는 참 힘들것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먹으면 상대방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문제가 아니예요. 맛있거든요.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파속 채소, 아니 그냥 채소 중에서 제일 부드럽고 달콤했습니다. 그냥 익힌 게 다인데도요! 입 안 가득히 아린 맛 하나 없는 달콤한 채즙이 가득 차고요. 알뿌리 전체가 실크처럼 부드럽게 씹힙니다. 이거 뭐야, 방금 내가 먹은 거 과일인가? 파라며? 대파나 양파를 아무리 부드럽고 달콤하게 구워도 채소의 감칠맛은 은은하게 남아있잖아요. 그 이상을 바란 적도 없고요. 그런데 함양파는 정말 순하고 달콤합니다. 정말 촉촉하고요. 왜 굳이 태워서 속만 빼내 먹는지, 그리고 왜 굳이 다른 조리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 전부 이해했어요. 이렇게만 먹어도 맛있고요, 이렇게 먹었을 때 제일 단순하면서 맛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소스는 원래 후무스에 매콤하게 양념을 해서 곁들이려고 했거든요. 로메스코 소스를 만들기에는 좀 귀찮았어요. 하지만 이게 웬걸, 후무스를 냉장고에 둔 채로 캠핑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라서 이제 당황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아이스박스를 뒤져 마요네즈에 쌈장과 다진 마늘을 넣고 잘 섞어 쌈장 마요네즈를 만들었어요.
아마 파프리카와 아몬드가 기반인 로메스코 소스나 최소한 병아리콩이 기반인 후무스와 함께 먹었으면 정말 잘 어울렸을 것 같아요. 하지만 쌈장 마요네즈도 함양파를 맛보기에 딱 좋은 부드러움과 매콤함을 가미해줬고요, 무엇보다 함양파 자체가 달콤하고 촉촉해서 뭘 찍어 먹어도, 뭔가를 찍어 먹지 않아도 눈이 휘둥그레지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로메스코 소스가 낯설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잘 익은 함양파를 베어무는 것 자체의 만족감이 굉장하니까요.
물론 다음에는 로메스코 소스를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까탈루냐에 직접 가서 먹어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그것보다는 소스를 만드는 것이 빠를 것 같거든요. 이거 하나만으로 축제를 열만 하다, 그렇다면 지난 캠핑은 우리만의 작은 축제가 아니었을까, 그런 감동적인 채소였습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함양파 이야기만 실컷 하다가 마무리된 캠차레터, 어떠셨나요? 호쾌하게 활활 태우는 과정에서 쏙 벗겨지는 속살, 달콤한 맛까지 너무나 재미있고 맛있는 경험이어서 꼭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직화구이가 가능한 분이라면 꼭 이번 주말에 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캠차레터는 다음 주에도 맛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