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정연주입니다. 4월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습니다! 내일이면 5월이네요. 4월까지는 그래도 한 해의 초반이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5월이라고 하면… 갑자기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로 열심히 달려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되겠죠…? 아주 살짝 조급해진 기분으로, 하지만 만사는 서둘러봤자 제 속도대로 나아가게 될 것을 믿으면서, 오늘의 캠차레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어른의 촉감 놀이 장미 화전에 꿀 뿌려 먹기
캠핑을 가면 이건 조금 스케일이 커진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데, 과연 나는 언제 철이 들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가 되면 어린 시절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처럼 좀 차분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당황하지 않는 심리 상태를 가지게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직도 구슬 아이스크림을 파인트로 퍼 먹고 싶고 하얀 옷에 숯검정이 묻으면 당황하며 내가 먹고 싶은 간식을 이따만큼 만들면서 재밌으면 장땡이라고 히히덕거리는 것이 일상입니다. 이쯤 되면 이십 년이 지난 후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이번 캠핑에는 어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놀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죠! 저 먹을 밥을 직접 차리기 시작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을 때는 아직도 즐겁습니다. 특히 캠핑에서 먹는 간식은 약간 먹을 수 있는 놀이를 한다는 느낌이예요. 그래서 반죽도 하고 도넛도 튀기고 쿠키도 굽고(사진을 찍기엔 많이 태웠기 때문에 아직 캠차레터에서 소개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이번에 만들기로 한 것은 화전이었습니다. 사실 저에게 진달래 화전을 부쳐주기로 약속하고 2년째 시간이 안 맞아서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지인이 있거든요. 보고 있나, 실장님? 그 약속 때문에 봄이 되면 화전이 생각나요. 곱게 물든 분홍빛 진달래가 붙어 있는 동그란 찹쌀 화전! 하지만 바쁜 사람한테 만들어 달라고 조르느니 역시 제가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오프닝 사진으로 가끔 꽃 사진을 올리는 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꽃을 좋아합니다.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것이라는데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랬어요. 그러니 당연히 꽃으로 만든 음식도 좋아합니다. 예쁘니까요. 하지만 꽃으로 음식을 만들면 보통은 그냥, 예쁠 뿐이죠. 식용꽃은 아름답지만 그 향은 연약해서 열을 가하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래도 보기에는 예쁘고, 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으니 화전을 부칩니다. 지금 화전 만들기 놀이를 하고 남은 식용꽃이 잔뜩 있는데,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만들어서 그 위에 잔뜩 얹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마치 샐러드 파스타처럼? 그럼 은은한 풀 향기를 느끼면서 먹을 수 있겠죠.
이번에 화전을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으로 구입한 식용꽃은 총 세 종류였습니다. 진달래는 이미 철이 지났고, 장미 화전을 꼭 부쳐보고 싶어서 미니장미를 골랐어요. 그리고 태양 같은 색의 금잔화, 제가 좋아하는 보라색이 고운 팬지를 추가했지요. 사실 조금만 정신을 놨으면 체리 세이지꽃(색이 정말 화사합니다!)과 데이지, 물망초도 추가했을 거예요. 색깔별로 하나씩만 고르자고 자제했지만 지금도 살짝 구매 버튼을 누르고 싶습니다. 어디다 쓸지 모르겠는데, 사실 꽃을 어디 쓰려고 사나요, 예쁘니까 사지요.
아무튼 이번에는 조금은 어디다 ‘쓸’ 생각이었으니까 세 팩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밥을 잘 챙겨먹고 난 후 모두 알아서 휴식을 취하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찹쌀가루를 꺼냈어요. 밀가루와 찹쌀가루의 차이점이 있다면 찹쌀가루에는 글루텐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밀가루에는 글루텐이 있어서 물을 넣고 치대기 시작하면 점점 점성이 생기고 한 덩어리로 뭉쳐지며 당겼을 때 잘 끊어지지 않는 막이 형성됩니다. 하지만 쌀가루는 그냥 턱턱 끊어질 뿐이예요.
그래서 쌀가루로 반죽을 할 때는 치댈 필요가 없는 대신 끓는 물을 넣어서 익반죽을 합니다. 뜨거운 물이 닿으면 전분이 살짝 호화되면서 점성이 생겨 모양을 잡을 수 있게 되거든요. 이게 아니라면 반죽이 버석거리고 팔랑팔랑 날아다녀서 동글납작하게 빚기 어렵겠죠. 물을 팔팔 끓여서 조금씩 부어가며 ‘귓불 같은’ 말랑말랑한 질감이 될 때까지 잘 섞어줍니다. 어릴 때는 이게 너무 부정확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부정확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또 이것만큼 반죽 상태를 명확하게 지칭하는 표현도 없는 것 같아요. 귓불을 만져보고 손을 씻은 다음에 쌀가루에 끓는 물을 부어서 귓불 같은 상태가 될 때까지 섞어줍니다.
그리고 동글납작하게 빚은 다음에, 식용유를 두르고 약한 불에 앞뒤로 지지면 됩니다. 일단 올려놓고요, 아직 익지 않은 윗면에 식용꽃을 올리고, 바닥이 바삭바삭해지고 거의 익으면 뒤집습니다. 뒤집은 다음에 너무 오래 익히거나 불이 너무 세면 꽃잎이 색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제일 위의 완성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성격이 급해서 바로 딱 이렇게 되었습니다. 허허.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노릇노릇한 질감을 좋아한다고 정신 승리를 했거든요! 그리고 그 핑계로 아이고 잘 안되네 하며 세 판인가 네 판을 부쳤어요. 장미 화전 한 판, 팬지 화전 한 판, 모든 꽃을 섞어서 한 판…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화전 만들기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지요. 나에게 예술성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면 최소한 참을성이라도!
하지만 재미있었어요. 완성된 화전에는 꿀을 뿌려서 먹는데, 당연하지만 이 꿀이 맛있는 꿀일수록 좋습니다. 오히려 꽃잎보다 꿀에서 더 꽃향기가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저는 여기에 과일향과 아삭아삭한 질감을 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캠핑장 옆 마트에서 저렴하게 팔던 딸기를 깍둑 썰어 뿌렸습니다. 사실 이때 머릿속에 무엇이 떠올랐는가 하면 이스파한이었어요. 리치 통조림과 산딸기를 올린다면? 리치 통조림 시럽을 살짝 두르면? 지금도 궁금하기는 해요? 내년에는 이스파한 장미 화전을 만들어봐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팬지 화전에는 바나나를 올려서 먹었습니다. 옆에 있었거든요. 이 무슨 근본 없는 조합인가. 하지만 재미있었어요. 맛있었고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음식으로 장난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장난은 멈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내일은 근로자의 날이죠! 쉬는 분도 출근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다들 주4일이 즐비한 5월을 어떻게든 신나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가오는 연휴에 신나는 계획이 있으시기를요! 캠차레터는 다음 주에 다시 맛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