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계절을 정하는 데에는 제철 식재료도 한 몫 하지만,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안녕하세요,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정연주입니다. 뜬금없이 소나기가 쏟아지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저번 주말은 집에서 보냈는데 딱 3분간 쏟아지던 소나기가 앞집 나무의 잎사귀에 직각으로 내려 꽂히며 짧지만 강렬한 빗소리를 남기고 그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닥도 채 다 젖지 못했더라고요. 하지만 밤에는 워낙 끈덕지게 비가 와서 우중 캠핑을 했다면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은 지난 캠핑 때 만든 이후로 자꾸만 다시 만들 핑계를 찾고 있는 로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제 캠핑 요리 레퍼토리로 완전 진입한 로띠 만드는 법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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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베트남, 대만… 후덥지근하고 야시장이 화려하면서 길거리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들입니다. 음식의 계절을 정하는 데에는 제철 식재료도 한 몫 하지만,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 나라의 기후에 딱 어울리는 음식이 따로 있지요. 확실히 여름보다 겨울에 더 호떡이 어울리지 않나요? 롱패딩을 입고 갓 구워 녹은 흑설탕이 줄줄 흐르는 호떡을 조심스럽게 베어 먹으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를 기다리는 기억에 찰떡이란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수박 주스인 땡모반만큼이나 여름에 잘 어울리는 디저트가 로띠라고 생각합니다.
로띠는 태국의 흔한 길거리 음식입니다. 반죽을 얇게 펴서 구워 토핑을 넣어서 먹는다는 점에서는 크레페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질감이 완전히 달라요! 크레페는 겉이 살짝 노릇해지도록 굽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질감입니다. 파리의 길거리에서 레몬 설탕 크레페를 사면 둥글게 부친 크레페에 바삭한 설탕과 레몬즙을 뿌려서 손수건처럼 두 번 접어 유산지에 끼워서 줍니다. 그럼 새콤달콤하고 설탕이 아작아작 씹히는 부드러운 크레페를 먹으면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너는 거죠.
하지만 로띠는 크레페만큼 얇게 펼쳐서 굽지만 아주아주 바삭바삭합니다. 질감이 전혀 달라요.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반죽입니다. 크레페는 팬케이크보다 더 묽은 액상의 반죽을 국자로 퍼서 달군 팬에 넓게 부칩니다. 굳기 전에 재빠르게 넓게 퍼트릴 수 있도록 충분히 묽어야 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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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로띠 반죽은 아주 간단한 파이 반죽이나 수제비 반죽에 더 가깝습니다. 마치 빵을 반죽하듯이 수분과 기름이 밀가루에 고르게 퍼지도록 한동안 치대서 글루텐을 형성시키고, 그 글루텐 때문에 반죽이 다시 줄어들지 않도록 충분히 휴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아주아주 얇게 펼 수 있어요. 파이 반죽을 만들 때처럼 밀가루에 버터 등 유지방을 넣고 고르게 잘 퍼지도록 손가락으로 비비듯이 섞는 것도 특이합니다. 그 과정을 보면서 아 그래서 바삭하게 구워지는 거구나 싶었어요. 이렇게 보니까 크레페와는 완전히 딴판이죠!
제가 처음 로띠를 만들 때 실패한 부분이 휴지 후에 얇게 펴는 과정이었어요. 반죽을 얇게 펴다가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니까 어느 시점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하고 스스로와 타협을 하는 거죠.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더라고요. 바나나를 넣고 착착 편지봉투처럼 봉할 넓이가 안 되는 것은 둘째치고, 구운 로띠를 먹어보니 이렇게 두꺼우면 바삭바삭한 로띠의 매력이 반감된다는 것을 확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로띠는 구우면서 안에 토핑을 얹고 봉해버려서 반죽을 한쪽만 익히게 되거든요. 그래서 반죽이 두꺼우면 바삭한 부분의 비율이 낮아지고 둔중한 질감이 되고 맙니다. 차라리 찢어지더라도 최대한 얇게 펴야 하는구나! 어차피 연유도 가져오는 걸 깜박했으니까 괜찮아! (캠차레터 11호를 참조해주세요) 그렇게 저는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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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너무 두꺼운 로띠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2박 3일간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게 된 현충일 연휴, 저는 전날부터 열심히 로띠 반죽을 새롭게 계량하고 반죽했습니다. 그 전 레시피에서 단점이라고 생각한 달걀 분량과 설탕 분량을 조절하고 아주 열심히 치댄 다음 소분하고 기름을 발라서 트레이에 담고, 비닐봉지로 단단히 봉했습니다. 꽤나 끈적이는 반죽이기 때문에 소분한 다음 기름을 바르지 않으면 서로 달라붙어서 다시 한 몸이 되고 말아요. 하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하지 말라는 실수는 다 해본 사람).
다음 날 아침, 저는 가볍게 좌절했습니다. 연유를 또 까먹은 거예요. 지금 연유는 저희 집 냉장고에서 3주일째 나오지 못하고 저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마가 낀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저는 자타공인 단맛 광인이기 때문에 캠핑카를 뒤지면 뭐라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꿀이 있었고요, 설탕도 백설탕과 사탕수수 원당이 있었고, 마멀레이드와 딸기잼이 있었고, 어째서인지 땅콩버터는 없었고, 초콜릿칩이 한 봉 있었습니다. 제가 개발 중인 다른 레시피가 있었거든요. 이 정도면 당 충전을 도와줄 달달한 로띠를 만들기에는 넘치고도 남는 재료죠. 참고로 베이킹 파우더와 이스트도 있습니다. 캠핑 베이킹을 위한 폴딩박스 필수품에 대해서도 한번 기록을 남겨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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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었던 로띠 반죽을 꺼낸 저는 심혈을 기울여 반죽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꼬집고 밀고 펼치고, 원래 가장자리 부분은 나폴리 피자처럼 조금 두꺼워지는 것이 정상이라고는 하는데, 거기 기대면 생각보다 두꺼운 채로 마무리하게 되니까 가능한 한 바깥쪽이 비치려나? 싶을 정도로 충분히 얇게 펼쳤어요. 찢어지면 다른 반죽을 덧대면 되죠!
그리고 그리들을 불에 올리고, 버터를 두르고, 얇게 편 반죽을 얹었습니다. 이때부터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가운데에 송송 썰어둔 바나나를 착착 한 켜로 올리고, 설탕이나 초콜릿칩을 뿌립니다. 저는 초콜릿칩을 반 웅큼 뿌렸어요. 그리고 한 세 알 더 얹었고요. 그리고 이미 굳기 시작한 로띠 반죽을 안돼! 하고 외치면서 사방으로 착착 접어 바나나와 초콜릿이 완전히 안 보이도록 봉했습니다. 총 세 개를 부쳤는데 세 번째는 반죽이 조금 작아서 완전히 봉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남은 반죽을 조금 뜯어서 급한대로 붙였습니다. 왜냐면 뒤집어서도 구워줘야 하거든요. 초콜릿이 흘러나와서 탈까봐 노심초사하는 상태였습니다.
이제 이렇게 봉해진 로띠는 앞뒤로 바삭바삭하게 구우면 됩니다. 여러 번 뒤집어도 상관없어요. 버터를 넉넉하게 둘러서 기름에 살짝 튀겨지도록 구워야 맛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노릇노릇, 바삭바삭. 뒤집개로 긁으면 바사사사사사삭 소리가 나야 합니다. 이게 바로 맛있는 로띠의 소리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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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띠가 앞뒤로 노릇노릇해지면 도마에 얹어서 한 김 식힌 다음 사각형으로 썰어줍니다. 하지만 저는 접시에 바로 올리고 가위로 잘랐습니다. 한국인은 가위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안에서 녹진해진 바나나와 녹은 초콜릿이 살짝 흘러나왔어요. 아, 달콤한 냄새… 그리고 여기다가 꿀을 뿌렸죠!
단맛이 과할 것 같지만, 꿀과 연유까지 뿌려도 됩니다. 로띠 반죽 자체에도 소금과 설탕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단맛이 강하지 않아요. 짭짤한 토핑을 넣어도 충분히 어울릴 정도로요. 다재다능하게 쓰기 좋겠는데 싶은 레시피거든요. 그래서 아침 식사로 눈 번쩍 뜨이는 단맛을 원하는 저는 안에 바나나와 초콜릿을 넣은 로띠에 꿀을 뿌렸습니다. 근데 정말 과하게 달지 않았어요. 아, 진짠데. 확인시켜드릴 방법이 없네요. 한 번만 만들어 보시면 안될까요. 제가 이상한 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름인데 태국을 떠올리게 하는 이 정도 단맛은 괜찮다고 봅니다.
로띠는 바삭바삭, 꿀과 초콜릿은 촉촉 달콤, 바나나는 녹진 달콤. 저는 지금 이걸 다시 만들 기회를 잡기 위해서 갖은 핑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주말부터 어제까지 두 번 기회가 있을 뻔했는데 놓쳤거든요. 포기하지 않겠어. 그리들에 구운 바나나 로띠가 함께하는 캠핑날의 아침. 이게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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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로띠
재료 중력분 170g, 소금 1/2작은술, 설탕 1/3큰술, 버터 20g, 달걀 1개, 물 70g, 바나나 2개, 초콜릿칩 또는 연유 또는 꿀
만드는 법 1. 볼에 중력분과 소금, 설탕을 넣고 가볍게 섞는다. 버터를 잘게 잘라서 넣고 손가락으로 빵가루 같은 상태가 될 때까지 밀가루와 함께 비비면서 고르게 잘 섞는다. 2. 반죽에 달걀과 물을 넣고 덜 찐득거리는 상태가 될 때까지 (약 15분) 잘 치댄다. 3. 반죽을 4등분한 다음 기름을 발라서 트레이에 담고 랩을 단단히 씌워서 냉장고에 넣어 휴지한다. (최소 1시간) 4. 바나나를 송송 썰어 준비한다. 5. 반죽을 꺼내서 아주아주 얇게 편다. (밀대는 달라붙으므로 손으로 돌려가면서 펴는 것이 좋다.) 6. 달군 그리들에 여분의 버터를 두르고 얇게 편 반죽을 얹는다. 바로 가운데에 바나나와 초콜릿칩을 얹고 양옆의 반죽을 바나나 위로 접은 다음 위아래의 반죽도 같은 방식으로 접어 편지봉투를 봉하듯이 봉한다. 7. 버터를 조금씩 더하면서 앞뒤로 뒤집어가며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8. 잘라서 접시에 담고 꿀이나 연유를 뿌려 먹는다. (꺼내자마자는 바나나가 용암처럼 뜨거우니 조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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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띠도 크레페처럼 길거리에서 넓고 판판한 그리들에서 구워내는 음식입니다. 제가 캠핑에서 가장 자주 꺼내는 팬도 여러 크기의 그리들이예요. 완전히 편편한 무쇠 그리들도 있고 가운데로 갈수록 약간 깊어지는 우묵 그리들도 있는데, 제가 선호하는 모양은 단연 우묵 그리들입니다. 가운데로 고기 기름이 모여서 김치나 부추를 볶기도 좋고, 볶음밥을 볶을 때도 살짝 우묵하니까 음식이 밖으로 잘 튀지 않아요. 말하자면 솥뚜껑을 뒤집은 모양 그대로인 거죠.
그리고 이 그리들에 디저트를 만드는 데에 왠지 로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아페티 같은 유튜브 채널을 보면 가끔 푸드 에디터 중에 가스 버너 두 구를 모두 차지하는 넓은 사각 그리들에 프렌치 토스트나 그릴 치즈 샌드위치를 굽는 사람이 있어요. 전체적으로 열 전달이 고르게 되고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솔직히 왜 좋냐고 하면 저는 간지가 난다고 말하겠습니다. 이쁘잖아요.
그러니까 로띠의 매력은 바삭하고 다양한 재료와 잘 어울린다, 여름에 잘 어울린다, 그리고 그리들에 구울 수 있다.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당연히 프라이팬에 구워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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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로띠 하나로 이만큼 수다를 떨 수 있다니... 캠차레터를 시작해서 행복합니다. 비록 저는 얇게 펴는 과정을 쉽게 봐서 한 번 실패하기는 했지만 여느 베이킹보다 쉽고, 아무거나 넣어 먹을 수 있고, 간단하고 맛있었어요, 로띠!
맛으로 떠나는 태국 여행을 보장합니다. 혹시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셨다면 후기도 꼭 알려주세요! 즐거운 대리 캠핑이었기를 바라면서, 이번 주도 캠차레터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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